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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23 (고후 6:3-13)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기쁨

6/3/2023 토요일

· 본문: 고린도후서 6:3–13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기쁨)

(3)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해서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에 대해서 이렇게 끊임없이 주장을 하는 이유는 복음의 진정성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자존심이나 자신의 신분의 문제 때문에 사도성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의 사도성이 무너지면, 바울을 무시하고 바울의 사도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외부에서 온 사람에 의해서 고린도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에 바울은 더욱 더 자신의 사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5장에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고 고린도교회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엄청난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는데, 그 일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 것인지를 오늘 같이읽은 본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4-5) 바울이 사도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당한 여러가지 고난의 모습은 먼저, 육체적 고통이었습니다. 4-5절은 대부분 바울이 견딘 육체적 고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견디고, 환난을 당하고, 궁핍하고, 고난 당하고, 매 맞고, 감옥에 갖히고, 난동을 견뎌야 했고, 끊임없는 수고를 당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16-19장까지의 내용만 대략 살펴보아도 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장에서 마게도냐 선교를 허락하신 성령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간 빌립보에서는 복음을 증거하면서 귀신 들려 미래를 점치며 돈을 벌어주는 여종을 치유했다가 그 주인에 의해서 고소 당해서 감옥에서 매를 맞고 고통 당하고, 그리고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는 피역 노동을 하면서 텐트 메이커 작업을 하며 낮에는 노동을 밤에는 복음 증거의 일을 하면서 세 달을 견뎠으나 또 쫓겨나고, 에베소에서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 지역 신인 아데미 여신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고소당하고 쫓겨나는 등, 육체적 고통과 불편을 끊임없이 견뎌야 했습니다.

(6-7) 그러나 이런 육체적 고통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긍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깨끗함으로 즉 자기의 물리적 유익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누구처럼 돈을 탐하지 않았고, 바른 지식을 전함으로, 당시에 지식을 팔고 돈을 팔았던 떠돌이 철학자들처럼 행하지도 않았고, 오래 참음, 자비롭게 복음의 말씀을 증거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즉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으며,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존하여서 그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편협된 생각이 자기 사욕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기준인 의를 가지고 행했습니다.

(8-10) 다음으로 바울 사역의 특징은 역설적인 것에 있습니다. 이 역설에는 그가 겪어야 하는 정서적이며 사회적 고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광과 욕됨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영광스러움이 있지만, 현실은 사람들에게 사기꾼이나 거짓말 쟁이라는 취급을 당하는 삶이기도 했습니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알려지지도 않은 이름 때로는 사기꾼이라는 이름도 같이 들어야 했던 삶이었고, 바울의 복음이 사람들을 속인다고,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디 있는가?”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기 때문에 속이는 이야기처럼 들렸으나, 사실은 이것이 참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9-10절에서도 바울의 역설적인 사역의 특징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 무명한 자 같으나 사실은 유명한 자요, 둘,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는 자이며, 셋,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넷,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다섯,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이들을 부요하게 하는 자요, 마지막 여섯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 였습니다. 6개의 비교가 나옵니다. 이런 역설적인 모습은 앞서 고린도후서 5장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적 관점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는 관점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세상적 관점으로 보면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로 취급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을 바라보면, 그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 된자로, 다른 사람들을 화목케 하며,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말씀의 사역자였기에 진정으로 유명한 자요, 살아있는 자요, 항상 기뻐하며, 부요케 하는 자요,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11-13)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향하여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신들이 늘 분명하게 속임없이 깨끗하게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에 그대로를 보고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11).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잘못 되어서 좁아져 보이니 그 마음을 넓히기를 (1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섬길 때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이 했으니 그 사역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마음을 넓혀서 바울을 받아들이고, 그의 사도적 정당성, 확실성, 신뢰성 authenticity를 인정하고 복음의 진정성을 얻기를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이사야 6:9)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마태복음 13:13-14) 즉 “보아도 인식하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신비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소식으로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보아도 보이지 않는 신비이며, 진리를 말했지만 거짓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복음은 분명하고 열린 진리이지만, 여전히 닫혀지고 감춰진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할 것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알고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 생각하는 점: 바울은 이 역설 가운데 한편으로 사기꾼으로 취급받고 부끄러움과 비방을 당하고 무명한 자로 취급을 당하면서 정서적인 고통과 사회적인 거부, 자신의 이름에 대한 평판에 이의 제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자신은 저 바닥으로 무명한 자로, 저주 받은 자처럼 취급을 당한다 하더라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이 위험에 처해도 바울은 기뻐하며 마음은 부요한 자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할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잔치를 베푸신다고 하셨는데,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은 그 생명을 구원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기에 기뻐하며, 삶은 잔치처럼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바울이 살았던 삶처럼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역설적인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이 넓어져서 복음을 바르게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축복을 누리며, 성령님이 베풀어 주시는 성결과 지식으로 섬기며, 친절하게 사랑을 나누면서, 인내하며 하나님께 더욱 충성을 다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 암송: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고린도후서 6:3)

· 기도: (1) 우리의 마음이 넓어져서 복음의 진정한 의미가 감춰지지 않고 분명히 드러날 수 있기를 (2) 복음을 증거하는 동안 당할 이 역설적인 고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평강과 축복, 성령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 잘 견딜 수 있도록 (3) 여름방학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하시거나 여행을 떠나는 성도님, 타주로 이동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되기를 위해서, (4) 주일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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