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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23 (고후 6:14 – 7:2)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6/6/2023 화요일

· 본문: 고린도후서 6:14–7:2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6:14-16) 바울은 14-16절 상반절까지 수사학적 질문을 통하여, 두 개의 대조되는 모습,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귀신인 벨리알 (히브리어에서 “무가치한 것 worthless”의 의미), 하나님과 우상의 대조를 통해서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진 두 집단이 결코 같이 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같이 지낼 수 있습니까? 빛과 어둠이 동시에 있지 못하듯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믿지 않는 자라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바울의 복음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유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복음과 율법주의는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율법주의는 율법을 통한 자기 의를 드러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복음과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유대 율법주의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를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의, 즉 자기 의를 말하기에 불법이요, 그리스도의 진리를 모르기에 어둠에 빠진 자들이며, 하나님의 의와 동떨어진 삶을 살기 때문에 무가치한 벨리알이며, 자신들을 중심에놓고 살아가기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14-15).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깨달아진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고 불신자들은 자기 자신이 생각에 옳은 소견대로 살아갑니다. 마치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나님 없이, 왕이 없이 자기 옳은 소견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불신자 혹은 율법주의자의 인생입니다 (14-15).

이렇듯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서로 다른데, 서로 함께 거할 수 없는 분명한 근거가 16절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니,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거한다니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니,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전에 우리를 먼저 거룩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건져내 주시고, 다음에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구약 언약의 핵심인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을 이뤄 주신 것입니다.

(6:17-18)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어찌 다른 우상과 거짓된 것들을 같이 자기 마음에 두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고 하면서 어떻게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전 된 우리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따로 구별되어 살아가라. 그리고 거룩을 유지하며 부정한 것 근처에도 가지 말고 만지지 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보다도 더 친밀한 개념인 “아버지와 자녀”로서 우리를 다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수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18, 참고: 로마서 8:15).

(7:1-2) 그런즉, 이 약속을 가진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 거룩한 하나님을 모시고 교제하며 살아가는 아들 된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보다 먼저 두고 사는 삶. 세상은 자신을 높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시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거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둘째, 거룩함을 이루며 다음으로 자신을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다 보면, 육적인 우리의 삶의 모습을 하나씩 십자가에 못 박으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옷 입어가면서 깨끗하게 되어갑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한차원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여덟 가지의 축복의 말씀이 우리 심령 가운데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육으로 부터, 더러운 영과 가치관으로 부터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을 낮추며 고난과 고통 가운데 섬겼던 삶의 모습을 6장 초반에 아주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는, 바울의 삶이 보여 주듯이 어떤 불의도 행하지 않았고, 누구도 해롭게 하지 않았으며, 아무에게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는, 복음의 진리대로 살아온 삶입니다. 이런 삶이 깨끗한 삶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을 돕고, 이웃을 이롭게 하며, 이웃을 복음의 진리가운데 세워가는 삶. 이런 삶을 살아온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받아들여야 거룩함을 함께 이뤄가고, 세상의 가치관과 함께 싸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 생각하는 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선하심과 거룩하심 가운데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믿지 않는 자와 악한 일에 동참하거나 이웃을 해롭게 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일에 참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의로움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인 팔복의 내용들이 우리 삶 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래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를 추구하며, 긍휼함과 깨끗한 마음, 화평하게 하는 일, 의를 위하여 기쁨으로 고난을 받아들이는 일 등. 이 일들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화목시키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성품들을 보일 때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칭찬하며,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 암송: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 기도: (1)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거룩하고 진리되고 선한 삶이 될 수 있기를 위해서(2) 교회 안에서는 율법주의적 신앙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기를, 특히 아직 신앙이 없는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위해서, (3)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많이 맺는 교회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의 성품으로 자라나는 교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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