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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23 (눅 7:36-50) …장벽에 갇힌 나를 넘어서

08/01/2023 화요일

· 본문: 누가복음 7:36–50 (…장벽에 갇힌 나를 넘어서)

방금 전까지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세례 요한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위해서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로서 세상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종교의 허례 허식이 아닌,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 받기 위한 삶에 대한 일을 하며 메시야가 오는것을 준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의 화려한 옷을 입고 제사 행위를행하며 종교의 허상 가운데 갇혀있는 바리새인들과 너무나 비교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비교하시며 지적해 주셨습니다. 또한 참된 지혜 있는 자들은 그 죄사함의 요한의 세례를 이해 할 것이고, 또한 자신의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아직 자신의 죄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 경험하지 못한 바리새인과 마음 깊숙이 자신의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한 죄 많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6-39)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식사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곳에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예수께 나아와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서 예수의 뒤,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난 뒤, 먼저 자신의 머리털로 깨끗하게 닦아 내로, 그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은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 현장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의 마음에 의심이 싹텄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죄인인 것도 알 것이고 가까이 하는 것 자체를 못하게 할 텐데… 정말 예수가 선지자가 맞는가?”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막힌 담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건, 죄인이건, 병든자건, 건강한 자이건, 심지어 격리된 문둥병자이건,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세리이건, 혹은 종교 지도자들이건 간에 누구에게나 허물없이 다가가셔서 그들과 교제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고 그들의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외향적인, 어떤 차별도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이 본문의 놀라운 점은,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하시던 주님께, 이 꽉 막힌 사회와 종교적 차별의 장벽을 넘어서 죄인으로 취급 받는 여인이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할 각오를 하고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죄인 됨을 인정하였기에, 사회적이고 율법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했으며, 거룩과 더러움의 종교적인 범주를 넘어서, 대중을 뚫고 초대받지 않은 자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엄청난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가진 사랑과 진리를 통해서 이 모든 차별의 장벽을 넘어 서 있었다면 이 여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급함과 갈망과 주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이 모든 장벽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여전히 자신의 장벽에 갇혀서 소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보다 더 뛰어난 분이신데 여전히 바리새인은 자신의 종교적인 이해의 한계에 갇혀서 예수님의 진 면목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40-43) 예수님은 이름이 시몬인, 바리새인의 마음을 아시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 (데나리온은 당시의 하루 임금)와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자, 둘 다가 그 빚이 없어 졌다면 누가 더 빚을 없애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랑하겠는가? “당연히 시몬이 대답하기를 많이 탕감받은 자라고 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판단이 옳다라고 하셨습니다.

네. 시몬의 판단은 옳습니다. 판단은 옳은데 이 질문을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이, 시몬 자신의 문제로는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예화의 핵심인 죄를 사해 주는 문제에 대해서 이것은 자신의 경우가 아니야 라고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어, 나는 하나님 앞에 의인인데…”

(44-50) 예수님은 그런 시몬의 마음 상태를 잘 아셨고, 다음의 말씀으로 여인과 시몬을 비교하며 설명하셨습니다.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발을 적실 때, 너는 발 닦을 물도 주지 않았다. 여인이 머리털로 그 흙 묻은 더러운 발을 씻기고 입맞출 때에도, 시몬 너는 나에게 입맞추지 아니하였다. 이 죄 많다고 하는 여인이 비싼 향유를 사용하여서 나의 더러운 발을 깨끗케 할 때에도, 시몬 너는 흔한 감람유 (올리브 오일)로 내 머리에 붙지도 않았다”

시몬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뤄가시는 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율법 학자 정도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해서, 랍비 (선생)로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냥 랍비 정도로 생각했으며, 실상은 그의 존중을 받을 대상까지도 안 되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취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존중은 커녕,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사람에게 행할 씻을 물 조차도 허락치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중동 지역이 사막으로 흙과 모래가 많이 있어서 집을 나갔다 들어오면 손과 발에 묻은 흙과 모래 같은 것들을 털어 내기 위해서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 물을 사용하여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깨끗게 하는 것이 정결 예식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일을 잘 알고 있었던 바리새인인 시몬이 자신이 초대했던 예수님께 이 조차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으로 그 죄가 씻음 받았다고 하는 최고의 칭찬을 하셨습니다.

· 생각하는 점: 본문의 아이러니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에서도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이 여인은 의인으로 나음을 입었고, 의인이라고 생각한 사회의 존중 받는 종교인인 바리새인은 죄인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자신의 종교적 행위로 자기를 죄를 짖지 않은 사람으로 의인으로 여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종교적 위선자였으나 겉으로는 아닌 척 살아온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자신의집으로 초대했으면서도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도 행하지 않는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인 종교의 허상에 빠진 자들이 가진 쉬운 망상입니다. 사랑함 없이 행하는 것. 이것이 가장 위선적인 일이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장벽에 갇혀 있어서 자신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 바로 죄의 벽에 갇혀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장벽을 허물고 우리의 진정한 실체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하지 못한 나의 삶의 실체를 직면하고, 이 여인처럼 죄의 장벽을 넘어, 수치와 모멸을 넘어서 사회와 종교의 장벽을 넘어서, 참된 생명의 주님께 나아 오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미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칭하셨지만 여전히 경건하지못하며 연약한 자신의 본 모습에 실망하지 않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셨던 주님께 매 순간 나아가 온전한 자유함과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암송: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47)

· 기도: (1)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예의 혹은 범주로 자신의 실체를 가리는 삶이 있었다면 드러내시고 인간의 본성의 모습인 죄인 된 자신을 직면함으로 매순간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며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은혜를 간구할 수 있기를 (2) 복음을 접하지 못한 식구와 친지 친구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서 (3) 제직과 구역과 구역장들을 위해서 (4) 스테이트칼리지 교회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복음의 통로 되는 교회되기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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