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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23 삼하 (19:1-8) 공과 사를 혼동 할 때

9/27/2023 수요일

  • 사무엘하 19:1-8 (공과 사를 혼동할 때)

압살롬의 군대가 요압이 이끈 다윗의 군대에 의해서 패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아름다운 상징이었던 머리카락이 나무가지에 걸려 사로잡혔고, 다윗이 간청했던 압살롬에게 선대해달라는 말이 있었음에도, 요압은 그 요구를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이게 됩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접한 다윗은 절망가운데 울부짖게 됩니다.

(1-8) 다윗의 개인의 슬픔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전체에 슬픔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백성이 승리하여 다같이 기쁨을 즐겨야 하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슬퍼, 마음이 아픈 상황이었고, 18:33에서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이라로 외치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기에, 그 통곡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누구도 감히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쫓겨 부끄러워 도망한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3).

이 분위기 가운데 압살롬을 죽인 요압이 다윗에게 항의했습니다. 요압은 “왜 백성이 승리를 하고도 부끄러워 하듯이 조용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왕과 그의 가족과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한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한 자들이 다윗에게 미안한 마음과 현실에서 비참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3, 5)”를 문제 삼고 질책한 것입니다.

요압의 주장은 옳았습니다. 먼저 군대의 사기 측면에서, 이제까지 다윗을 위해서 싸운 자들이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 자괴감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6절에는 “왕께서 미워하시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라는 요압의 지적은 너무 옳은 말이었습니다. 정당하게 이겨서 승리했지만, 지도자의 개인 문제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다음에 어떻게 그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짐할 수 있겠습니까? 군대 또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싸움을 했는데, 왕이 자신의 잃은 아들의 목숨만 귀하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자기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두번째로, 정치적으로도 다윗이 압살롬을 위해서 슬퍼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로서 슬퍼할 수 있지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 전쟁을 이끌었고 참여한 자입니다. 여기에서 압살롬을 위해서 슬퍼한다는 것은 왕이 한편으로는 압살롬의 정치적 모략을 어느정도 인정한다는 표현을 주기 때문에 반란군에 대한 시각이 흐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윗의 태도 자체가 공과 사를 구분못하는 지도자로 여겨 질 수 있기때문에 왕으로서나 지도자로서는 바른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세번째로, 다윗의 슬픔이 요압 자신에게 개인적으로도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전쟁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싸운 자입니다. 요압은 언제나 다윗에게 충성을 보여왔고 그의 모든 노력을 통하여 다윗이 권력을 유지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에게 너무 과한 감정을 쏟는 다면 이것이 요압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자신이 이 왕국을 위해서 쌓아온 노력에 대한 배신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압이 왕에게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19:6)”라는 그 말이 실로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의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만큼 목숨을 바쳐 다윗과 그 가족과 이 나라를 위해 싸운 자들의 목숨 값이, 압살롬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윗에게 한 없이 가치 없게 여겨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분명히 다윗에게 당장 울음을 그치고 슬픔지만 마음을 잡고 바로 나가서 당신과 함께 싸워온 백성들과 하며 격려하라고 내몬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며, 그들의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존재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의 임무입니다. 비록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잃은 자신의 개인의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전쟁에 승리를 한 날 그들의 공적을 인정하고 같이 기쁨의 자리에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혼동할 때 공동체에는 혼란이 생깁니다. 다윗의 지금까지 문제들을 살펴보면, 이 부분에서 연약함이 있었고,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함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공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사적인 권력으로 개인의 사욕을 위해서 사용할 때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이 그렇고, 우리야를 죽인 사건이 그렇습니다. 개인이 지은 죄를 공권력을 사용하여 가리려다가 하나님 앞에서 큰 심판을 겪은 것입니다. 또한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범했을 때에도, 자식의 문제라고 바르게 일을 처리하지 않은 사적인 문제가 압살롬의 살인죄와 반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압사롬의 죽음 앞에서 또 부정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와 왕으로서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싸운 자들의 공로와 기쁨을 가리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압이 압살롬을 살해한 것은 별개로 하고 요압이 다윗에게 왕으로서 지도자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라고 권면한 것은 군대의 충성도와 사기를 위해서도, 다윗 진영 내부의 결속과 안정을 다지기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의 일로 부름 받은 자들이라면, 그 일에 맞는 충성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던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충성된 병사로 세워질 것을 부탁하며, 그리스도의 병사의 의무를 다하며,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아니라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삶이 필요한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자로서 법대로 경기를 하며, 수고하는 농부로서 땀 흘리며 살아가라고 명했습니다. 우리는 그 부름 받은 곳에서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사적인 욕망에 치우지지 않으며, 온전히 공적으로 부름 받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되게, 공정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암송: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사무엘하 19:6)

· 기도: (1)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임무를 져버리지 않고, 충성된 일군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2) 수요 예배 가운데, 온전한 찬양과 기도 말씀을 통하여 심령이 낮아지고 하나님을 더욱 높이며 영광돌릴 수 있도록 (3) 교회 교육부서들과 제직들, 그리고 찬양팀과 중보기도 팀을 위하여 (4)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안자현, 권종승, 심수영) / 김정호 선교사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Asian Prison Ministry 사역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현재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후원하는 Out of the Cold – 노숙자 돕는 단체- & Keystone Family Alliance -고아 및 결손 가정 아이 돕는 단체-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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