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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23 삼하 (19:9-39) 밑 바닥에서 배우는 회개와 용서: 높은 곳에 있을 때 자고하지 말고 밑 바닥에 있을 때 절망하지 말자

9/29/2023 금요일

· 본문: 사무엘하 19:9-39 (밑 바닥에서 배우는 회개와 용서: 높은 곳에 있을 때 자고하지 말고 밑바닥에 있을 때 절망하지말자)
19장은 다윗이 압살롬 군대에 승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다윗을 지지했고 반대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처우와 보상의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9-15) 먼저는 이스라엘와 유다가 다윗을 대하는 다른 태도가 9-15절에서 그려집니다. 이스라엘 부족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받아 들이는 것에 주저하는 반면에 유다는 언제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을 섬겼는지도 모르듯, 바로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16-23) 또한 두번째로, 16-23절에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 동안에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날 때 자신을 저주하던 시므이가 나타나서 용서를 간구합니다. 아비새를 비롯한 다윗 군에서는 이 저주한 자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하나 다윗은시므이를 용서를 해 줍니다. 출애굽기 22:28에는 재판장이나 백성의 지도자를 모독한 자를 죽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윗은 이기쁜 날 피흘리기를 원치 않았고 기쁜 날 가운데 관용을 베풀며 용서해 줍니다.

(24-30) 그리고 세번째로, 24-30절에는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날 때에 므비보셋의 원래 의도는 자신이 저는 다리로는 갈 수 없어서 말을 준비하여 다윗을 따라나서는 것이었는데, 그 종인 시바의 속임수로같이 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시바가 므비보셋이 사울의 왕위를 다시 세우려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여지는 것은 분명 자기를 돌보지 않은 모습들인 발을 씻지 않았거나, 수염과 옷을 빨지 않음으로 평안한 삶을 바라지 않고 쫓겨 다니는 다윗 왕처럼 지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의 말의 신뢰성을 높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므비보셋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시바와 므비보셋 양쪽으로 재산을 나눠 갖게 합니다. 이 결정에 대해서도 므비보셋은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시바에게 주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30).

(31-39) 그리고 마지막으로, 31-39에는 다윗이 자신의 피난길에서 도움을 주었던 바르실래를 왕궁으로 초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윗이 어려운 시절에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고 그것을 다시 되갚아 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자기가그 공을 취하지 않고 대신에 김함 (요세프스에 따라면 바르실래의 아들)에게 그 기회를 양보합니다.

· 생각하는 점: 하나님은 다윗을 밑바닥에 두셨다가 다시 왕의 자리로 회복시키 과정을 거쳐서 다윗을 왕과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원래 주어진 왕과 지도자로서의 권한과 자격을 통하여 사랑과 공의와 용서와 은혜 갚음을 보여주시기를 바라십니다. 다윗이 사울을 이기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갔습니다. 그러나 그 높은 곳에서 한순간의 자만과 교만으로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고 자신의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왕의 권한에서 쫓겨났습니다. 다윗이 저 밑바닥으로 쳐 박힌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위치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그를 비방하고저주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다시 왕으로 세워질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다윗을 그 상황가운데에서 건져 내셨고, 그를 다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섬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저 밑바닥에서 다시 올라오는 이 입성의 시기가 진정으로 다윗의 왕위를 다시 다지는 때였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정으로 중요한 시기로서 자신을 믿고 자고했던 다윗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전능하신 능력으로 되어진 것을 깨닫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공의의 성품을 배워가는 시기가 지금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이 회복의 과정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며 동시에 실행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다시 왕으로 세워지는 그 과정에서도, 자신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에 섰던 아마샤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비록 자신의 조카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배반하며 요압의 군대 장관 자리를 그가 차지하며 이제까지 대적했던 사람인데 그를 용서하며 그의 지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열된 나라를 다시 하나로 이어나가기 위해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용서의 마음으로 행한 일입니다 (9-15).

그리고, 다음으로 다윗이 자기를 저주하며 폭언을 일삼았던 시므이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비새가 취하는 행동이 당연한 반응입니다. 왕을 배신하고 경멸한 자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 일입니다. 율법에서도 그것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잘못을 겪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다윗이었기에 이 용서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시므이가 표면적으로라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다윗이 그를 용서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처럼 불완전한 자를 사용하신 것,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신 것을 깨닫았기 때문에, 다윗이 시므이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6-23).

그리고 므비보셋에게 대하는 다윗의 모습에서도 정의와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시바 (므비보셋이 배신을 했다고 고함)와 므비보셋 (자신의 다윗에게 신의를 지켰다고 함)의 서로 다른 의견사이에서,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아니하고 서로의 공만 인정하는 모습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 둘 다에게 재산을 나눠주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긍휼을 베풀며정의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늘 힘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힘이 있을 때에는 약자에게 강하고, 힘이 없을 때에는 강자에게 약한 것이 당연한 것처럼보이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외적인 힘에 태도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있건 아래에 있건 오히려 믿는 자는 힘을 가지고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힘의 논리를 떠나서 의를 행하고 사랑과 용서를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양을 치는 위치에 있던지 왕으로 세워진 위치에 있던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같은 사랑과 공의와 위엄과 영광과 용서로 행하셨습니다. 바뀐 것은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들 또한 다윗이 가장 밑바닥으로 낮아지고 나서 깨닫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흠있는 자신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과, 그런 자를 들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기반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용서의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 기도: (1) 낮아질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바라보게 하시길 (2) 힘의 논리가 아닌 공의에 바탕을 둔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논리를 배우고 실행할 수 있기를 (3) 캠퍼스 금요기도회와 청년부 모임을 위하여 (4) 아직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우리의 부모님, 자녀들, 친지와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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