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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6/24 눅(16:19-31) 여기서 위로를 받든 혹은 고난을 받든

본문: 누가복음 16장 19-31 (여기서 위로를 받든 혹은 고난을 받든…)

본문은 우리에게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로 알려진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이것이 현재에도 일어나는 그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현재의 삶이 영원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19-26) 먼저 비유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날마다 호위 호식하며 자신만 배 불리며 살았던 부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그의 집 앞에서 배고픔에 허덕이며 살다 간 거지 나사로 또한 비참하게 죽게 되었습니다. 개가 자신의 상처를 핥고 있을 정도의 불쾌하고 비위생적인 상태 있던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평안함을 얻게 되었지만 부자는 음부에 빠져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었고, 지옥 불구덩이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자는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며, 손 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얻어먹기를 간구했으나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그는 여기서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는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모습은 앞서 15장의 탕자의 아버지와 16장에서 불의한 청지기를용서해 주신 그 넓은 용서와 관용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 집 앞에서 배고픔의 고통에 있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자 자신은 먹을 것을 쌓아 놓고 편안하게 살아가면서 정작 자기 집 앞에서 누적대기 옷을 입고 아무먹을 것이 없는 그에게 따뜻한 밥, 물 한 그릇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을 것을구하지 못하지 못할 정도의 삶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은 삶의 고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첫번째 교훈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울 능력이 있는 자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난하고 병들고 착취당하는 이 땅의 모든 비참한 자들에 대해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을 방법 만을 찾기 때문입니다. 바로 집앞에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 집을 드나들던 부자였을텐데 그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 무시의 대가가 죽고 난뒤에 무시로 돌아와서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말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나라로 초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들과 함께 머물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교훈은 내세보다 오히려 현재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삶이 영원의 모습을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살아있을 때 긍휼과 자비가 없다면 죽어서 긍휼과 자비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의살아있는 삶은 사욕만 있지, 타인에 대한 자비가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위로를 주지 못한 자는 죽어서 괴로움에 처하게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의 모습이 영원의 결과를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교훈은 죽고 난 뒤에는 되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죽고 난 뒤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듯이서로가 놓여 있는 곳에서 서로에게 갈 수 없었습니다. 설혹 나사로가 그 부자에게 물 한 방울을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간격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심판 이후에 한 번 결정되어 들어간다면 다음에 거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어떤 가능성고 기회도 없다는 것입니다.

(27-31) 또한 죽은 나사로와 부자의 대화는 계속 이어져서 강조점이 살아있는 부자의 다섯 형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현재에 살아있는 그들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나사로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과연 “회개”할 수 있을까요? 즉, 부자가 살아있을 때에 그의 문 앞에 있던 거지 나사로를 보지 못했는데, 이제 살아 있는 그 형제들의 눈에는 거지 나사로가 보일까요?

그래서 네번째 교훈은 그 다섯 형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모세와 선지자, 즉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약은 십계명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사랑이 핵심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 와서 즉 그들의 삶에 늘 있었던 “나사로가” 다신 살아 돌아가서 부활에 관한 삶을 이야기 한다고 할지라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본질적으로 즉 구약의율법과 예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구약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들에게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간다고 한들, 알아보고 회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본문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름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관심 없고 곁에 있으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과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울고 있는 자와 함께 울고, 웃고 있는 자와 함께웃는 복된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우리 주변의 이름없이 소외된 수 많은 나사로에 눈을 감던 우리 삶을 회개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2) 신앙이 필요한 부모님과 자녀들, 친지와 친구들이 올 해에는 복음을 듣을 수 있기를 위해서 (3) 교회가 선교와 전도 봉사와 구제 등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4) 교회와 협력하는 선교사님들 (권종승, 안자현, 심수영)과 후원하는 단체들 (keystone family alliance & Out of the Cold)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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